중국에서 불교의 존재가 역사적 사실로서 기록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. 따라서 이 시기의 불교미술은 순수하게 불교신앙에만 기초하여 표현된 것이 아니라 도교나 신선사상과 같은 중국 고유의 신앙에 의한 조형과 병행하거나 중국 토착의 신을 대신하여 조형되고 있었다.
3세기부터 불교 교설과 불
조각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종래의 탑 중심 신앙형태 또한 불상으로 옮아갔다. 즉, 사원의 중심축이 탑에서 서서히 불상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. 이와 함께 교세의 확장으로 사원 건축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각 분야에 걸쳐 화려하고도 다양한 조형활동이 가능해져 불교미술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이
)에 만들어짐. 후한때 요동지방의 무덤구조와 유사. 다실구조(합장)
덕흥고분-408년 유주자사를 지낸 ‘진’이라는 인물의 고분
무덤주인의 초상화. 공적인 생활이 벽화로 남아 있음
2. 5-6C(장수왕)
가장 고구려적. 불교적
생활 풍속이 잘 나타남
무용총, 쌍영총, 각저총, 쌍실총
사신도가 치밀함
조형물을 말한다.
이 범주에는 당․탑․불상․불화․장식․지물 등이 포함될 수 있다.
본론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중국의 불교미술은 그 시대의 정치적,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. 그 시대의 통치체제라든가 통치자의 통치성향,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다.
미술의 전통은 그 이후 고대 중국미술의 지주가 되었다. 진(秦)·한(漢) 시대에는 옛 무덤의 벽화와 만리장성이 축조되어 그때의 생활상과 뛰어난 기술을 알 수 있다. 남북조(南北朝) 시대에는 인도로부터 불교미술이 전래되어 돈황에 석굴 사원이 축조되었고 불교조각이 성행하였다. 중국미술에 있어
. 탑은 쉽게 말하여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이다. 다만 불교도들의 주요 예배 대상이 되면서 사원의 중심부를 이루어 그 성가(聲價)가 높아간 것이다. 인도탑(印度塔)의 경우는 복발형(覆鉢形)으로 탑의 기본양식은 기단부(基壇部)와 탑신부(塔身部), 그리고 상륜부(相輪部)로 구성되어 있다.
조각되어 있다. 그 당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 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앞선 기술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.
★ 스키타이시대의 중앙아시아 미술
BC 6세기부터 3세기경 까지 스키타이 민족이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지배하였다. 기마민족이었던 스키타이는 빠르고 강한 군마들이 그들의 힘의 원천
이 각국에 있어서의 예술적 특징으로 규명되어질 수 있는데 강한 것을 보이기 위한 중국의 예술은 안정되고 큰 형에 호소하고, 자연의 혜택을 받은 일본이 즐거운 감정을 아름다운 색으로 나타내듯이, 애상의 미를 표현하기 위한 한국의 예술은 가늘고 긴 선으로 대지를 이탈하려는 느낌을 갖게 한다.
ⅱ. 인도의 종교
인도는 다신교에 종교도 여러 가지이다. 대표적으로 힌두교가 가장 많이 믿어지고 불교가 한 때 크게 융성했으나 지금은 힌두교 다음으로 쳐져있는 상태이다. 그 밖에 많은 종교들이 있다.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와 리그베다의 인도신화는 6억이라는 엄청난 신의 숫자를 자랑한다. 그
1. 약력
1940년 6월 14일 경북 경산 태생
경북대학교 학사, 석사를 마쳤으며,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.
문체부 문화재 위원, 서울시 문화재 위원장, 동국대학교 박물관장, (사) 한국미술사학회장등 을 역임했다.
현재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대학원의 불교미술전공